[마을인문학 포럼:정릉편] 1강 마을에서 마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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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마을카페 그리고 예술공간까지 <행복한 정릉예술창작소> 김경아 대표

저는 정릉에 살기도하고 성북구에 오래 살았습니다. 사실 지방 사람이지만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결혼해서 처음 신혼살림을 차린 데가 성북구에요. 서울에 사실 연고가 없어서 아무데나 살아도 되는데 성북구가 집값도 싸고 2000년도에 성북구에 상경해서 지금까지 딱히 갈 데도 없고 그래서 눌러앉아 살고 있어요. 제가 처음에 돈암동에 살다가 전세를 사니까 자꾸 옮겨 다녔어요. 정릉에 살다가 또 정릉에서도 한 세 번을 옮기고 성북동도 갔다가 이랬는데 살기는 그렇지만 저의 주 활동무대가 정릉이였습니다. 정릉에 있던 이유는 애들 키우는 문제때문이였어요. 오늘 그 얘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17년 동안 성북과 정릉에 살면서 있었던 일들을요. 제목은 나의 동네살이 이야기라고 붙여봤어요. 저는 여기 성북신나가 청년들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청년들이 많이 오셔가지고, ‘나, 이거 애 키우는 얘긴데 청년들한테 먹힐까?, 삼포라고 애도 안 낳는다던데’ 라고 생각했는데 애기도 있어서 너무 반갑네요. 제가 직장생활을 15년정도 계속 하다가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팔자 좋은 전업주부로 살고 싶었는데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마을 활동이라는 걸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은 동네사람들하고 인연을 맺은건 훨씬 그 전부터지만 활동을 통해 공간을 이용하는 공간운영자로서 동네사람들을만나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이 사진으로 쭉 보여 드릴건데 업데이트 된 사진을 여기 추리면서 아 제가 진짜 2005년부터 어린이집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살았는데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났구나 약간 그만큼 나도 늙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추억이 되는 시간이였어요.

2005년부터 2010년부터 있었던 일을 말씀 드릴건데요. 제가 지방에서 상경했다고 했잖아요. 제가 2001년도에 아들을 낳았는데 키워 줄 사람이 없는거에요. 직장은 다녀야 하고 시골에 있는 친정엄마한테 애를 맡겼어요. 금요일 저녁에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달려가서 차를 타고 4시간 걸리는 친정으로 가서 금요일 밤 토요일 일요일까지 아이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날 다시 기차를 타고 4시간동안 걸리는 시간을 4년정도 했어요 길에다가 돈 다 뿌리고 사람이 사는게 사는게 아니였어요. 그런데 어느날 저희 친정엄마가 선언을 하시는거예요 못 키우겟다.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끊어질것같고 니 자식 니가 키워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부터 멘붕하게 된거예요. 서울에는 연고도 없고, 친척도 없고 베이비시터나 조선족 아줌마한테 맡길 수 없는 상황이라 남편이랑 회사를 그만둘까 하다가 성북구에 공동육아어린이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결혼 전에 티비나 이런데서 보고 좋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곳인데 정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아봤는데 정릉에 있는거에요 그래서 돈암동에서 살다가 정릉으로 이사를 왔어요. 집을 찾아 갔는데, 성북구에 하나 밖에없어요 지금도 하나에요 더 이상 생기지 않고 집이 이렇게 생긴거에요 2005년도에 그래서 저희남편이랑 같이 갔는데 저기 무슨 고아원 같다고 시설이.. 30년된 2층집을 쓰고 있었는데 구들장은 물이 새고 화장실은 악취가 나는데 애들이 너무 행복해보이는거에요 그래서 여기밖에에 갈 데가 없다. 집이 무너져 내려도 갈 데가 없다. 하면서 얼른 여기 조합원으로 가입을 했어요. 그때 당시에는 보편적이지않은 보육시설이였어요 인가도 못받았어요. 그때당시 2억정도 하던집인데 2억을 어떻게 만들었냐면은 11가구의 부모들이 당시에 돈을 600-700 출자금을 모아서 1억원 정도의 돈을 만들고 나머지는 대출을 했다고 합니다. 한 어린이집에 한 20명정도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어떤 애들은 7살이 되고 8살이 되면 졸업하는데 매년 졸업하고 들어오는 애들을 밑에돌을 빼서 위에돌을 얹지고 그런식으로 지금까지운영되고 잇어요. 그런데 삼년뒤에 집이 너무 아.. 낡고 애들이 생활하기 불편하고 위험하고 그다음에 신입생들이 들어오지 않는거에요 집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신입 조합원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집수리를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돈은없고, 그러다 보니까 어린이집 엄마중에 건축설계사가 있었어요 건축설계사가 만들고 아빠들이 막 벽돌을 쌓고 아주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하는 전기공사를 빼고는 아빠들이 와서 6개월정도 리모델링을 했고 이 모습이 교수단지에 가면 있어요. 공동육아어린이집은 새우깡주고 먹다남은 김밥주고 막 언론에 보도되고 그 때 당시에는 보육시설이 늦게 시작하고 일찍 끝나고 직장다니는사람들은 애를 맡길 수 없는 24시간반도 있지만 그때당시에는 그런게없었어요 원칙이 있었는데 아침7시30분에열고 저녁 8시까지 문을 여는데 집처럼 가장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 반드시 어린이집에서 1분 안에 자연놀이터가 있어야한다. 우리는 정릉이있어서 정말 아이들이 사계절을 정릉에서 지내고 저희는 정릉이 자기의 가장 좋은 친구다라고 말할정도로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그런 원칙이있고 반드시 엄마와 아빠가 깊이 어린이집운영에 관여해야한다. 이것은 권리이자 의무인데 하루교사 대신에서 한반을 맡아서 아이들과 지내야하고 한 방에 아이들이 5-6명을 넘어선 안된다 교사 일 인당 아이 인원이 적어야하고 모든 식자재는 유기농 친환경 생협 재료로 만들어야한다. 여러 가지 규칙들을 원칙들을 지켜야만 공동육아어린이집으로 해주는 공동육아어린이집 그런 문화가 있었어요. 제가 이제 큰애와 둘째애는 2005년부터 2010년 까지 키웠으니까 6년 저도 키웠는데, 아주 만족스럽게 키워냈죠 몸은 굉장히 바빠요. 일주일에 한번씩 엄마 아빠가 수업해야하고 아이들이 일년동안 먹을 김장을 다같이 해야하고 마당에 있는 모래는 일년에 한 번씩 일톤 트럭을 빌려와서 갈아주고 해야 될 것이 50가지정도는 되는것같아요. 그걸 안하면 벌점을 줘서 벌금을 내게하고 정해진 교육을 들어야하고 조합이기 때문에 일번에 두 번씩 총회를 해서 모든 결정을 민주적으로 해야하고 그런것들이 귀찮은 일인데, 뭐가좋냐면은 어디 하나 의지할곳없는 사람들이, 예를들면 오늘회사에서 회식을 해야하는데 어떻게하지? 게시판에 올리면 내가 될거같아. 먹이고 재울게 서로 데리고 가려고 그집에누가와서 우리애랑 놀아주면 자기가 좀 편할 것 같으니..! 그런 품앗이가 맞이문화가 잘 되어있었어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는 아이들이 부분인데 어린이집에 모든 아이들이 그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이모삼촌 이런 제2의 엄마 아빠가 되어가지고 지금까지도 저희애가 초등학교6학년인데 그 시절에 같이 다니던 열 가구가 많게는 한 두 달에 한번 씩 꼭 만나고 여름에는 꼭 같이 캠핑가고 겨울에는 썰매도 타고당기고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6년동안 지내다가 둘째가 초등학교 들어가던 때에 문제가 생긴거에요. 어린이집은 저녁까지 하면 되는데 초등학교는 되게 일찍 끝나요 학교를 마치고 학원 뺑뻉이를 돌리자니 이때까지 키워온 것들이 있는데 애도 힘들고! 그래서 부모들이 처음에 애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고민들을 똑같이한거에요 얘를 이번엔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협동조합형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해본경험으로 우리가 방과후 교실을 만들 수 있을거야 이번엔 가볍게 출자금도 100만원 200만원으로 시작을 했어요. 주소 이전을 해서 한 학교로 다 몰았어요 좋은 학교도 아니였고, 아주 작은 정릉에 보면은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않는 정수초등학교라고 작은 학교가 있어요. 공부를 안 시키고 한 학교가 되게 작아요. 그러니까 수학여행 같은 것도 규모가 없으니까 강원도밖에 못가요 수학여행을. 그리고 산 밑에있어서 멧돼지도 잘 나오는 학교에요 학교 바로 앞에있는 전세방을 얻었어요. 제 애를 포함한 저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방과후 교실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면 운동장에 서 놀다가 달리다가, 잠깐 들려서누워서 숙제나 하듯 매실도 담구고 숙제만 겨우봐주는정도? 학습적인 그런것들은 하지 않았아요. 그런데 애들이 초등학교를 가니까 학교친구들을 사귀게 되잖아요. 여기애들만가지고는 아니고 애들이 더 놀고 싶은 욕구가 있는거예요. 단오나 이런거 행사할 때 동네사람들 초대하기도 하고 친구도 데려 오기도하고 세 절기에 맞게 놀이문화가 되어있어서 단오나 추석이나 정월대보름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아빠들 하고 같이 씨름도 하고 추석때는 경찰이나 노인정에 가서 떡도 돌리고 지역사회에 우리가 지역사회에 이바지한다 이런느낌이였어요. 요즘애들이런거 잘 경험하지 못하니까..! 그때는 이런것들이 별로없었어요.

그래서 이제 2010년부터 고학년아이들 욕구가 길어진 2011년쯤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경력단절여성이된거죠. 실은 이제 회사를 다닐때에는 그만두면 나는 매일 문화센터도 다니고 그렇게 살거라고 생각했는데 몸이 근질근질한거에요 그래서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엄마들있잖아요. 그래서 엄마들끼리 모여서 아리랑시장 빈자리에 얼른계약을 했어요. 저희동네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파는곳이 없었어요. 커피를 마시려면 성신여대까지 가야하는거에요. 우리가 집집마다 국수도 삶고 노는데 자꾸 남 집에가지말고 아지트를 하나 만들자. 해서 만들게 된거에요. 이때도 동네 엄마들이 돈을 모아서 임대보증금을 대고 또 이용할 동네사람들한테 조금씩 기부를 받고 출자를 받아서 마련했어요. 그때가 2012년이였는데 성북구에서 마을만들기 사업 시작한다고 주민들이 뭘 만든다할 때 성북구에서 돈을 지원해준다고 할때였어요 600만원인가를 받아서 안에 인테리어를 했어요. 그때 저희가 카페지기로 당번정해가지고 지키는 엄마들이고, 안에서 1평밖에안되는카페안에서 빵도 굽고 커피도내리고 그러면서 살았고 동네사랑방같은 곳이 되기를 바랬기 때문에 활동들을 많이했어요 애들한테 책도 읽어주고 모임도하고. 여기가 열평짜리 카페였는데 2평이나 할애해서 공간을 만들었요. 갓난애기들보는 엄마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는데 유용하게쓰였어요 벼룩시장도하고 문화행사도하고 같이 영화도보고 같이 사진전도하고 동네에 있는 작업하시는 분들 작품을 빌려와서 전시회도하고 그다음에 시장에서 시장상인들과 같이했던활동인데 시장이 침체되어있으니 시장상인중에 음식하시는분들중에 음식을 사가지고 이게 누구네집 할머니 음식이에요 누구네집 떡이에요 하면서 아침에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주는활동들을했어요. 여기를 보시면 남포정육점이나 부동산 사이에 침체되어있는 공간들이에요 그러니까 기본 어린이집 부모들이 이용해주니까 여기가 마치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인거에요 우리가 성북구의 지원을 받아서 이런걸하니까 옆에 상인들이 질투하기 시작하는거에요 남포정육점도안되고 부동산도 파리날리니까 시장에서 막 저희를 째려보는 것 같았어요. 시장을 활성화 하기위한 활동들을하자 . 서울시에서 전통재래시장살리는 그런 사업들을하는데 소규모 재래시장에서 문화활동을하면서 주민들을 사업에들어오게 하면 서울시의 상공회지원과에서 그런걸 해서 돈을 지원받아서 이런것들을했어요. 아침에 새벽일곱시부터 기타를치면서 떡드세요 이렇게하고 막 할머니 분식점에 만들어준 죽, 설렁탕 이런걸 담아서 아침에 정릉에 산책하러오시는 어머님들을 카페로 들어오게하고 시장많이 이용해주세요 하는 활동들을했어요. 시장이 너무 너무침체되있고 볼것도없고 먹을것도없는 시장이라 어떻게하면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을까하다가 시장뒷골목에서 이런것들을 한번 해본거에요. 막 온갖 욕으로 난무했던 벽에다가 벽화도 그리고 장터도하고 이런 야시장도 만들어보고 이걸 할 때 사람들이 많이 모였죠, 지금은 또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시장을 배경으로 영화를 한편 찍어봤어요 20분짜리 영화인데 시장유랑이라는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에요 판타지 엽기에 가까운영화에요 영화를 만들어주신 분은 카페에 자주오는 분이였는데 영화감독이라는거에요. 근데 올해 부산국제영화화제에 주목받는 분으로 나왔더라구요 시장이 너무 느낌이 좋아 이러면서 암울하면서도 옛날 정취도 느껴지고 약간 판타스틱하고 아 우리 영화를 만들어가지고 시장을 좀 알려볼까 한거죠 시장이 딱히 큰 보여주고싶은 홍보성 모습이 없었기 때문에 아예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간거에요 닭발을사서 노상방뇨하는 아저씨 정육점에서 칼가는 시장의 아저씨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서 만든 명작인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카페를 하다가 카페를 2012년도에 시작했는데 카페가 너무작은거에요 커피를 먹으려고 온 일반사람들이 들어오지못해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저런걸하고있지만 사실 바느질도하고 독서모임도하고 카페에서 여러 가지를 했지만 기타를 배우고싶다 이런 요구가나왔을 때 어떻게 할 수가없는거죠. 정릉교회뒤편에 행복한 정릉창작소는 지금도하고있어요. 카페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뭐 이런것도 하고싶다 저런것도 하고싶다하는데 그것들을 할 수 있는 공간 그걸 더 확장해 볼 수 있는 가능성등을 염두해보고 사람들끼리 임대보증금은 나중에 돌려받으니까 이자 그런거 생각하지 말고 백만원 이백만원 씩 모아서 하고 그림도그리고 기타도 치고 연극도하고 아줌마들이 막 이런걸해보기가 차마힘들잖아요. 40대아줌마들이 연극하기전에 몸푸는거거든요 일주일동안 있었ㄴ던일을 몸으로 표현하는거에요. ㅎ라아버지 선생님이 동아아파트 사시는 화가분이신데 선생님으로 모시고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서 그림그리는데 이번에 미술 대전에서 특선이 배출됬어요 4년정도하니까 청소년들 기타하고 연극 캘리그라피 이런것들..! 사람들이 뭐하고싶다 하면 5명정도에서 공통적으로 시작이되면 개시을 해요 첫째원칙은 동네에서 가를쳐줄사람을 소개한다. 5명 정도모여서 끝까지 하겠다는 각서를 바는다. 최소한 1년을 같이 한다. 정도의 의견을 받고 시작해요. 일반 주민센터처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게아니라 먼저 좀더배운사람이 나중에온사람가르쳐주기 서로서로배우고가르쳐주는게 게속해서 생기는 것 거울에는 엄마들이 애들어린이집 애들 나온애들 어린이집을 졸업한애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런것들 풍물도 가르치고 동화작가 초청해서 어린이 그림책에 대한얘기도하고 어른들은 좋은강좌가 있으면 강좌도 들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애들인데 생리하기전에 여자의 몸과 대학생이 될 면생리대를 만들면서 수다떠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인형만드는 모임도있었고 악세서리만드는모임도있었고 이 사진은 왜 이렇게 있냐면 봉변가왕이라고 노래를 못해서 봉변을 당한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를 배우는 건데 선생님을 다른 사랑의 연탄배달 그런일을 하시는 분인데 이분이 노래는 뱃심에서 나온다고 이런자세로 숨을 일분동안 쉬라고 하셔서 이런 사진이 찍혔습니다. 이렇게 다섯명 모여서 노래 잘하고싶다 모임이 모이면 모임을 진행하게 되는거죠.

카페를 그만둔건 건물주와의 사이가 안좋았고 나올 때 사실 카페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있잖아요 매년 조금씩 적자가나고 그러나 그 카페가 가지는 장소성 그 의미를 사상시키기가 다른공간에 들어갈수있으면 마을의 커뮤니티를 위해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없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정릉2동주민센터앞에 정릉도서관1층에 정릉청소년휴카페 성북구청에서 운영하는곳이고 구청에서 이런공간을 만들어놧는데 1년넘게 방치되고있는곳이고 와이파이가 터지니까 애들이 막 게임하고 뛰어다니다가 다치기도하고 민원의 웅상이 되던곳이였어요. 엄마들이 구청에 전화해서 와이파이 끊으라고 하고 애들이 모여서 게임하고 있고 그래서 성북문화재단에서 구청에 위탁받아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공무원들이 이런공간을 운영하는것들은 옳지않다하면서 마을 전문가들이 카페를 운영해주면좋겠다해서 정릉 청소년 휴카페를 운영하게됐어요. 아이들은 3시부터 보이고 어르신부터 애기엄마들 많이와요 평소에는.. 옆에 문을열면 이만한 공간이있는데 상자텃밭을 하거든요? 여중생들이 와서 감자도 캐고 그걸 구워먹기도해요. 보통때는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하는거 너무힘든거같아요. 어른이 뭐하자고하면 안해요. 뭐시킬까해서 도망가고 구슬리고 얼리고 회유와 협박과 욕을해서 이런것도하고 그 건물주차장에서 천막쳐놓고 놀기도하고 영화도보고 합니다. 작년여름에 했던 재밌는 프로젝트? 라고 해야하나 귀신의집을 아이들아! 동네에서 뭐하고싶니? 롯데월드요 그런얘기를 막해요 주차장에다가 놀이공원 같은걸 만들어볼까 돈도많이들고 그다음에 하고싶은게뭐야 했더니 공포체험을 하고싶다고 애들이 그래서 밤에 동네 아이들 80명정도가 모여서 고대부중3학년 애를 4명을 섭외해서 특수분장을 시켜가지고 안에 넣어서 괴기한 음악을 틀어놓고 창신동 시장에서 피흘리는 것들을 사와가지고 넣어놓고 아이들을 한명씩 들여보내서 체험을 시켰죠. 그래서 아주 경찰이 출동하고 난리나는 그런일들이있었어요. 아이들이 비명을질러가지고 경찰아저씨가 출동했답니다. 재밌게 놀던기억이있어요. 실은 이름은 청소년휴카페인데 구청에서 지어준거라 말은 청소년휴카페지만 모두의 카페에요 이 할아버지 제가 좋아하는 할아버지인데 단골이신데 1926년생! 91세 서예를 잘 쓰셔서 할아버지가 서예를 가르쳐주고싶다고 100프로 출석을 하면 돌려주겠다. 줄긋기부터 배우고 있고 끝나고나면 명심보감 한구절씩을 알려줬어요. 겨울에 리스만들기 아이들하고 같이 뜨개질 바느질 목도리를 짜서 어르신한테 나눠주고 되게 솔솔하게 오이도있고 고추도 있고 깻잎도있어서 샐러드만드는 파티를 하기도하구요 이건 가장 지난주에 있었던 일인데 영화좋아하는 중고등학생들이 무지개극장이라고 여기서 영화상영회를 해요 자기들이 팝콘도 튀기고 호객행위도하고 한달에 한번씩 영화를 선정하는 과정이 너무 재밌어요 키스신이 나와서안된다 영화를 한편선정하는데 삼개월이 걸렸어요 관객은 다섯명? 몇명이오고 이런활동들이 대부분 그렇게 평가받는 세상이긴한데 몇 명이오고 몇시간동안 했고 내빈이 몇 명 참석했고 저희는 별로 상관하지않고 동네사람들중에 한명두명이라도 동네에 이런공간이있다고 우호적인 눈으로 쳐다봐주는게 중요한것같아요. 네 이렇게 활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생적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기까지 고군분투 스토리 <교수단지 정릉마실> 김경숙 대표

아까 보니까 사진이 되게 많더라구요. 저도 사진이라도 많이 보여 드릴걸 이러고 저는 자료를 만들 줄 모르니까 사진 몇 장 보여드렸거든요. 저희 마을은 교수단지 이러면 왜 교수단지지? 이런 질문들을 많이 들어요. 마을이 예전에 40년 – 42년 정도 서울대 교직원들을 위해서 정부에서 주택을 좀 마련해라 이런 이야기가 있었나봐요. 나라가 그 때만해도 어려울 때니까 그 혜화동에 서울대학교가 있었고 그분들을 위해서 조합을 결성해서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때당시 37가구로 시작했구요. 도로 모습이라던가 그런것들이 환상형도로 이렇게 되어있더라구요. 그게 이제 계획적으로 마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집 지으면 또 옆에도 짓고 살고, 그래도 그렇게 해서 윤장석교수님이라고 우리 나라의 건축학교수님이 이제 설계를 하고 택지 조성을 하는데 길도 그렇게 만들고 해서 마을이 시작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이웃집들도 가만히 보면 다른 학교 교수님들이 많이 오셨던 것 같아요. 제가 13년 째 살고있는데 저희집도 다른 대학교 교수님이 집을 지어서 사셨어요. 제가 세 번째 그 다음에 온 세입자 인데 그런데 이제 잘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들어갈 때 그런 얘기가 들리더라구요. 재건축.. 그게될까?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재건축이된다는 소식이들렸어요. 순식간에 그게 진행이되더라구요 조합이 결성됐다 소문이나고 동네를 이렇게 6구역으로 묶어지고 바로 조합이 금방 눈앞에 만들어졌어요. 동네엄마랑 같이 구청에 갔더니 이건 법적인 것 75%를 채운면 25%가 적지않은 숫자인데 법이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은 75%를 가져와버렸다 하면서 진행이됐어요. 어느 마을에서 이게 말이돼? 아직 헐어지도록 그런 동네는 아닌데 저희가 그렇게 모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갑자기 조합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빨리 진행해야해서 사업자도 선정이 됐어요. 대기업으로.! 강제로 우리집을 사가겠다는거에요. 그 가격이 근데 공시 직가의 이십퍼센트가 공통적인 가격이래요 누가와서 이렇게 한다지만. 그래서 이건 아니지 않나해서 부리나케 여기에는 아마 없을 것 같은데 저희 마을에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어요. 책자를 부랴부랴 만들었어요. 마을 안에 모였는데 삼십여가구가 모였어요. 사진에 영상에 관한 일을 하는 분이 있어서 책자를 부랴부랴 만들어서 말로해서는 어디를 찾아가서든 지네들 이익을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 이렇게 밖에 안보더라구요. 근데 정릉은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확정이 되었고 그다음에 조합이 만들어진거에요. 일년 사이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허가가 나온거에요 우리 마을 모습은 이런 것이다 우리 마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킬때에는 릉이 어떤화려하거나 어디 해외를 다녀보지 않았지만, 유형의 가치도 있지만 무형의 가치 그런거 있잖아요. 자청 풍수지리설에 따라서 그런것들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고 하더라구요 유네스코에다가는 유네스코에서 지금보다 예전의 모습을 살려가면서 해야 된다는 조건이 달려있는데 거기다가 대고 아파트를 짓겠다는게 말이 안되잖아요. 여러분들이 아까 보셨던 것 처럼 이게 지금 저희마을 전경이거든요? 지금 어디 산동네 어떤 분이 말씀해주셨는데 그런 이미지는 우리 마을은 아직 아니거든요. 주차장도 대체로 다 있어요. 집에 그런 분들이 사셨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구릉지대기 때문에 밑에서 들어가고 이렇게 마당이 있고 차고는 아래들어가있고 그런 것들을 알리는 작업들을 하고 대법원까지가서 승소를 하고 그럼 끝나냐, 그런게 또 아니더라구요 3년간 지나면서 내부에서 많이 지쳐있었고 소송비용에 이런거 책자를 만들어서 하려니까 사무실을 만들었어요. 첫달에는 3년정도는 회비가 5만원이였어요 그렇게만 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담아서 나와서 이런 것들을 들고있잖아요. 6차까지 방어했는데 저희나라 기록이라고 하더라구요. 문화재청에 승인을 받아야하고 그런 직장에가서 못하는 분들은 늦게오셔서 간식이라도 사준다던지 회비외에도 순수한 마음들로 한거에요 여기에 이렇게까지 봉사하게 될줄은 몰랐어요. 아 이것이 조금 막 잘돌아가게까지만 하고 나와야지 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갔는데 마을 지역에 우리가 이거를 하게 되면 우리가 손해를 너무많이보기 때문에 우리는 지켜야해 이런마음이아니고 정말 더 순수하게 이 마을은 문화재옆에 우리가 지켜야한다는 마음들이 강했어요. 내가 나라에서 이 문화재를 위해서 담장 허물고 우리집을 내놓으라고 하면 그럴 용이가 있다. 이거 그사람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서 한다는 것은 용납할수없다는 마음들이 많았거든요. 끝까지 갈 수 있었거든요.

3년이 지나고 법적인 것은 대법원까지가서 끝났는데 사무실을 없애는게 어떨까랑 사무실 재건축은 우리지역은안된다. 라는 의견도 있었고, 사무실을 없애면 추진위원회는 살아있는거래요, 조항 무효판결을 받았지만 사무실은 살려놔야한다고 하면서 어르신들의 요청이 있었어요 어르신들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해서든지 내가 지켜야 하는건가 생각이 들었고 다른거 생각하지말고 하면서 3만원하다가 2만원으로 회비를 내렸어요 일방적으로 그걸 지키려고 하시는 분들의 희생만 강요할 수 없어서 월세만 나올 수 있도록 31만원인데 나머지것들은 어떻게서든지 어떻게서든지꾸려가겠다고 그런것들을 하게되면서 저희모임에 특징중에 하나가 마을안에서 이런활동들을 하면서 머리띠 둘르고 그렇게하잖아요 저희 그런거 안했어요. 딱 한번 구청에 쫓아갓어요 우리가서 한번 씨익씨익 해야한다 구청장 나와 이렇게 해야한다. 하면서 웃기기도하고 어쨌든 강하게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구청장님 절대로 안나와요. 한시간했는데 안되가지고 우리가자~ 이건아니다~ 품위를 지켜야지 이거우리다 우리안맞는다 그런거 없이 이웃하고 잘지내는거에요. 아 저도 저분이 저렇게하고 싶어하는사람 추진위원장이 저희 윗집 대각선 윗집은 이사, 밑에집은 대위원, 이렇게 그앞에 대위원이런데 둘러싸여 사는거에요 그런 사람들이랑 부딪히지 않았어요 아예 그냥 그분들도 인정하는거에요 그 강요하면서 얘기는하시죠 그러면서 웃고마니까 이런 일들을 진행하면서 정릉마실이 어떻게만들어지게 됐냐면 정릉을 사랑하는 모임 정사모. 어른들이 갑자기 이름을 지었는데 잘지었더라구요. 그걸로 활동하면서 사무실을 맡았다고 했잖아요. 어르신들 생각에 이걸 어떻게해서든지 우리가 마을을 가꾸고 진짜 저희가 제가 알리고 싶었던건 헐어버리고싶은 마을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싶었거든요. 그런 말하자면 쟁이라고 말해야하나 소리없는거죠 우리가 그런일들을하는데 그속에서 우리 회원뜰주변에는 회비로 꽃바구니를 달기도하고 꽃패도 있으면 우리돈으로 만들기도하고 흙을 파다가 이런일들을 했었거든요 어르신들이 이 동네만해도 자기 앞가림만하고 다니는분들이여서 갖고있는거 내놓으라고해서 어려운분들 도바고하면서 살고 있는데 한집당 천만원정도 썼는데 더 이상은 강요할 수없는거에요. 2만원으로 낮추면서 어디를 찾아갔어요 아는분 안면이있어서 박대표님 장수마을 박대표님한테 성북구청에서 도시아카데미할 때 마을을 잘 가꾸는거에 대해서 관심이있기 때문에 5명이 수료했었거든요. 우리 마을이 힘든 상태인데마을을 가꾸는 일을 하고싶은데 어디가서 도움을 받을지 모르겟다 얼마가 필요하냐? 서울시에 돈이 좀 남아있대요 가을 끝 무렵에 남갔기 때문에 신청을 계획서를 가져가면 천만원에서 천오백만원을 받을 수 있대요 그런거 필요없다고 얼마정도 필요하냐 50만원 100만원정도 필요하다고 했더니 저기 센터를 찾아가래요 센터에 양팀장님을. 얘기를 듣더니 얼마나필요하냐 했더니 50만원은 안써도 마을학교를 하면 지원해줄수있다해서 그 돈으로 돈은 받지않고 돈 받는거 싫어해요 골치아프니까 그분이 느끼기에 양선혜 팀장님이 돈을 목수 장수마을이 있으니까 나무도 하면 거기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무상자를 만들어줬음 좋겠다해서 꽃을 좀 심으려고 나무를 줘서 같이 도와주냐해서 나무를 일미터 구십센치의 박스를 같이 만들기위해 잘라달라고해서 초겨울에 쾅쾅 ! 타칵? 그걸로 막 상자를 만들어서 꽃 넣을 상자를 만들었어요. 정사모이름도강하고 그런거왜하냐고 우리도 사무실만 유지하고 나중에 큰일나면 안된다고 하면서 걱정하셔가지고 걱정하시는 분 이해시키기 힘드니까 이런걸 하려고하면 괜찮은 것 같다라고 설명드리면서 설득했다. 세무서에 등록을 하라고 그래서 정사모안에 정릉마실이 있는거에요 큰일이있을 때 같이논이하고 책임질일이있는거있으면 같이하자 ! 이런것들을 시작했습니다. 정릉마실을 꽃길이 2m의 꽃상자가나와서 저 윗길에 가신분들많을거에요 거기 우리회원분들이 양쪽 길가로 많이 사시고 그길에 했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그길에 하기로 얘기를 하고 사시는 분들한테 얘기를 했더니 3월달에 겨울에 꽃상자를 만들어놓고 꽃길 만들을거 라고했더니 어르신이 사료보다 튼튼한거 더 큰거 가져와서 집에 또 막 어르신들 자재 나뒀던거 다 45m 편도로 100m 하자고 하셨습니다. 한편으로 신나면서 걱정하면서 왜 이렇게 길게하냐고 그냥 나두시라고 이거 꽃사는게 걱정되가지고 일단 만들어놓고 보자 이러면서 흙도 많이 끌어와서 이렇게 시작이 되었는데 정원축제를 열게됬어요. 100세 며느리댁 뜰사랑 금낭화뜨락 등의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끼리 살림만하던여자가 이웃에 가보고 했는데 나는 너무 신기하더라구요. 우리집하고 다르니까 너무 재밌는거야. 어떤집에가면 대문 탁 열면 이렇게 마당에 대문 열고 오솔기처럼 만들어놓고 숲속에 봄에 노랑매화라고 나비같이 생긴거 있어요. 그 어르신이 서울여자대학교 1회졸업생인가 그런데 마을을 만드신 분인데 나비처럼 휘날리는게 좋아서 어떤 댁에가면 꽃을 심든 상추를 심든 나란히 나란히 심는거에요. 제 기분이 유치원생을 보는 느낌이여서 웃음이 절로나오는거에요. 꽃이 정말 자연스러운거 좋아하는데 꽃잎이 떨어져도 한번에 쓸지, 그거 있잖아요 뭐든지 깔끔하게 매력있고 너무재밌는거에요. 이 마을에 어떻할까 어떻게 알릴까 하다가 정원축제를 한번 해보자 ! 해서이걸 누가 대문을 열어서 아무나 들고온다는게 쉽지 않잖아요. 이웃집에서는 재건축하려고했던분들 자네 집좀 열어놓으라고 열어놓으면 잊어먹고 하루 왼종일 약간 그런겁이없나요. 과연이게 될까? 다섯 집 정도가 오케이해서 정작 날짜는 다가오는데 재건축하는 사람들한테 내가 이일을 하는거는 그사람들한테는 싫은 일이잖아요. 재건축을하고 싶은사람들인데 시간을 미루다가 이거 큰일났다 안했다가는 사이가 정말 안 좋아질거 같아서 벨을 울리고 전화도 안받아서 난리가 난거에요. 막 화를 내시면서 미리 얘기해줘야지 자기네집들만 이쁘게 해놓고 우리집은 저 윗집 올라 가면 다 보이는 집들이고 개방하는 집이 그 다음 다음 위에 집 이렇게 되어 있었거든요 우리집 지붕 다 보이는데 청소하고 그러시더라고 죄송하다고 용기가 안나서 못했어요 앞집에 계신분들이랑 진작 얘기하지 비는 장소 말씀 못드렸다고 죄송하다고 하니까 그분들이 어쨌든 알았다고 도와줄거없어? 하면서 부침개도하고 그 이렇게 그분한테 저 음악회하려고하는데 오카리나 불어주실수있냐고했더니 해주셨고, 나 어디갔다와야하는데 그날 시간이 될지? 하면서 팅기셨는데그날 안시켰음 큰일 날 뻔 했어요. 정말 좋았어요 그냥 이 마이크없이도 오카리나 연주소리가 멀리 가더라구요. 저희집에서 하면 마당까지 다 이웃집에 울려펴져서 너무 좋았어요. 이 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거에요 너무 신기한거에요 너무 좋은거야 새로운거야 그 어느 건축하시는 분도 놀라시더라구요 바위덩어리가 어떻게 바로 집이랑 연결되는지. 그러면서 저희가 마침 그렇게 축제가 다가올 무렵에 다섯가구였는데 제가 앞집에 나랑 비슷한 연배였는데 사실 부담스러운일이여서 그집은 그런댁들은 재건축하려고왔던분이고 하려고하는분들이기 때문에 차마 말을못했어요. 어느날 기회가 돼서 얘기를 했더니 나는 뭘하지? 이런얘기를 하시는거에요 저 소리는 우리집도 연다는 소리가 아닌가 이런생각이 드는거에요 열기만해도 괜찮은지 보여줄 것도 없는데 그 자체로 예쁘잖아 하면서 그 댁에다가는 도자기 전시 이런거 하고 마을안에서 어르신들 오래전부터 도자기를 했기 때문에 70살 넘으셨는데 도자기도 같이해주시고 그림전시도 해드리고 어떤댁에서는 음식 비빔밥 꽃 비빔밥 꽃 키워가지고 꽃 따서 그걸로 비빔밥도 하고 그렇게 했고 간편정원 이런데는 빌라 같지만 다가구가 혼자사는데 집을 지은집있잖아요. 여럿이사는건아니고 당신도 하고싶다는거에요 이 이름들을 각자 지었어요 이분은 한 평정원 한평을 다정원으로 만드신 분이였어요 이런 축제들을 통해서 정말 우리앞집에 친구같은 경우에는 그 친구는 이사올 때 남편이 나는 전원생활같이 살고싶다. 그집으로 가면 오피스텔 하나 해줘라 이런거 했었대요. 이사와가지고 몇 년동안 인사정도만 하고 지냈어요. 그 축제같은거 한다할 때 막 벌레나 이런거 싫다고 하더니 완전히 바뀌어서 퇴근해서 오면 잔디에 풀 뽑고있어요. 모기 뜯겨가면서 그렇게 많이 바뀌고 자기가 이렇게 재미있게 그렇게 이거에 대해서 갖게 될지몰랏대요. 이거 하면서 드는 생각이 정원축제를 하면서 마을 이웃들하고도 그렇게 친해져서 좋다고 하네요. 어른들의 주민들의 생각이 첫해에 하고 내년에 또 해야지 하는 생각은 한 개도 없었어요. 내 집이 아니잖아요. 내 집이아니라 그런 남의 집을 여는거잖아요. 첫 해 여덟가구를 열고 그 열자마자 주민들이 너무 재밌다 이거 그러면서 어느댁은 이런얘기를 하셨어요 우리가 그 그집을 바라보고 남의집에 바라보고 개방을하고서, 둘째날인가 됐는데 저 집 너무답답해 저 부터도도 마당 문 연다하면 한쪽 문 만 연다고 생각을했어요. 그런데 저기 앞에 다 열였으면 좋겠어 하더라구요. 용기를 내서 저기요 어르신 이거 다 열면 안돼요? 했더니 열어도 된대요. 망치로 여는거에요. 자기 40년만에 다 여는거래요 그래서 망치로 녹이다 슬어있으니까 그래서 열었는데 그 댁이랑 우리랑 다 환호성을 질렀어요 다여니까 다 드러나는데 너무예쁜거야. 연주하고 아랫집인데 그분이 하시는 얘기가 우리집이 이렇게 예쁜지 몰랐대 그 댁이 지나가던사람이 어르신 두 분 만 사시거든요. 근데 130평정도되는데 집이그냥 수리안하고 유일하게 하시는게 잔디만 깎으시는거에요. 가끔 가다가 연주소리 악기소리가 나요. 담장너머로 응원하고 지냈거든요. 자기들도 너무 놀랐다는거에요. 저도 하는 말씀들이 끝낼 생각이였는데 안된다는거에요. 가을이였는데 봄이 더예쁘대. 봄에 또 했어요. 11가구로 늘어낫어요. 어설프지만 진행이되고 그래서 이제 세 번쨰는 쉴 타이밍이다 고만 봄에하니까 가을이 더예쁘대. 그래서 가을에 또했어요 . 성북구에 2번을 이걸 받아서 했거든요. 가을예산을 넣지않았었어요 쪼개고 우리회비도 넣고해서 가을에 더 크게 진행이 됐었죠. 정말 올 봄에는 쉬어야한다. 우리가 어떤생각인지 어떤생각이드는지 사람들은 어땟는지 어ᄄᅠᆫ말들이 들리는지 시간을 갖자. 했더니 봄에 정원축제하고 결혼식까지했어요. 결혼식을 진행하고 가을에 진짜 쉬기로 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안했더니 그 제가 솔직하게 얘기해봐라 가을에 쉬니까 어떻냐했더니 저도 사실은 아이 우리하지말자이러면 말아야해요. 그것이 맞는 얘기에요. 그렇게 가는 것이 맞는데. 우리 최소에 일년에 한번은 해야겠다. 하지말자는 의견이 없는거에요. 일단은 외부에서도 많이 오시더라구요. 부산,순천,광주에서도 올라오더라구요 인근에 있는 서울시내에서도 많이들 다녀가시고 하더라구요.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렇게 와서보면 화려하거나 보여드릴거 없어요 우리들이 했다는 것을 가져가셨음 좋겠어요. 우리집에 있는거 다 길에다가 심고 이런 일들을 했더니 누가 또 추천을 해서 서울 꽃으로 피다 대상을 받아서 상금을 받았는데 너네 이렇게 써라 이런거 없었어요 그것이 우리때 딱 돈으로 줬대요 예전엔 아니였대요. 돈으로줘서 신났죠 어디 도와주신 분들이 생기니까 이일을 하면서 너무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고 사람 맘의 문을 여는거였는데 그 이런것들이 그래도 정원축제가 여기까지왔는데 누구가 내가 힘들다고해서 안에 없애기에는 그분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아까운거에요.

그런것이고. 아이들이 보이는데 여기는 사진은 없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이 5학년선생님이 전화가왔어요. 인터넷에 연락처가 있었대요. 수업을 한번 진행해달라고 요청이와서 황당했어요. 선생님이 간곡하게 말해서 무슨애기를 했음좋겠느냐해서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해서 저희 집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와서 그런 이야기 들려주고 아이들에게 다른 집도 보여줬거든요. 여러분들이 봤을 때 우리마을에 보면 40년 넘었다고 했잖아요 그, 부시고 새로지을만한것들 보면 돈이면 다해결할수있는것들 그런 느낌이 들었냐고 물어봤더니 아이들도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고치고 수고스럽지만 이렇게 해야하는 것이 나는 맞다고 생각해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마당이 있는것들이 생소하잖아요 아이들이 마당을 좋아하더라구요. 공부했던 내용을 글과함께 해주셨어요. 정릉마실의 현재는 저희가 다른 문제가 있어서 해결하고 넘어가고 작년에 서울 걷기 공모전에 끝까지 참여했는데 그분들이 되게 잘 봐주셔서 이 도로교통과의 주관이엿는데 녹색교통인데 모른 것이 그렇게 나가서 제일 굉장히 잘 봐주셨나봐요 이번에 돈이 꽤 많이 투자를 해주시더라구요 길도 정릉가는길도 노면하고 꽃길도 만들어주시고 마을전체에 우리만하는것이아니라 어쨌든 많이 바뀌게 될거에요 계속해서 저희는 아파트라던지 빌라에도 골고루 돈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소년상담가가 마을에 아지트를 만든 이유? <정릉18119> 신희경 대표

커다란 깨달음은 아니고 누구한테 큰 충격을 안겨준 날이였고, 제가 아이들을 상담실에서만 만나고 굉장히 단조롭고 그런 생활을 하다가 우리 모두한테 특히 우리나이의 중년에게는 그 시기가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뭐라그러죠? 이 댐에 금이 간 것 같은 금이 갔다고 해서 댐이 바로 터지진 않잖아요. 살짝살짝 가는 금들을 큰 금이 간 사건 이였던것같아요. 오랜 친구에요 대학교 때부터 저 친구는 출판업계에서 몇십년을 했고 저는 상담을 했던 사람이고 우리 뭐해야하지? 이렇게 살아야하나? 하다가 나는 이제 뭔가 다른 걸 해볼테니 당신도 회사를 그만두고 같이 무엇을 해보자. 하고 무엇을 할지도 모르지만 해보자. 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이 공간이구요.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들었고 제가 깊이 생각했던 것들은 가만히 있어라. 라는 정언명령 같은 용어가 상징적으로 들렸거든요 세월호 안에서의 내용 뿐 만 아니라 우리가 청소년에게 했던 말이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만들었음 좋겠다. 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고 안국동 광화문에서 오피스텔에서 상담을 했고 길음에 살다가 정릉으로 이사를 왔어요. 이 근처에는 인연이 개인적으로 있어요 승례초등학교를 다녔거든요 무의식중에 이쪽으로 이사 온 건 거기에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동네에서 사는 건 6년 밖에 안되는데 앞서 발표했던 분에 비해 지역 활동에는 초보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 들어오시면 이것들이 있는데 공간의 구성은 2층 1층 지하1층 반지하입니다. 이쪽에서 보면 일층이고 이쪽에서 보면 반지하인데 용감한 컵케이크라는 빵집이있고, 정릉주민이기도하시면서 미혼모들의 자립을 위해서 소셜벤처를 만들어 활동하고 계십니다. 빵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여기가 문화공간 카페 슈필렌 청년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공간이에요. 뒤죽박죽 도서관이라는 출판하셨던 선생님이 만드신 도서관이구요 저기가 뒤죽박죽 별장도서관인데 만화만 모여있는 곳이고, 초등학생들도 가능한데 안쪽에는 청소년부터 가능한 공간입니다. 이층이 개인 주택이였는데 일층은 이렇게 쓰이고 있고 다 부신거예요. 리 모델링을 통해서 안전하지 않다 해서 빔을 다시 설치하고 그런 과정을 겪었는데 2/3 정도를 사용하는 상담소로 이용하고 있고 청소년 부엌공동체 아지트 틴스에서 사진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보통 때는 굉장히 시끄러운 공간이죠. 부엌공동체이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네시 반부터 아홉시 반 부터 시장보고 밥 먹고 치우고 나중에 와서 프로그램하고 카페가 일곱시에 문을 활동하는 공간입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지역문화공간 가만히 있지 않아도 되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보자해서 만든공간이구요 2015년 3월부터 여기서 시작을 했구요. 처음에는 교수단지도 돌아보고 아리랑시장도 돌아봤고 이만하게 생각을했는데 복덕방에서 더 큰 집을 보여주니까 저거 저 정도는 되야 하지 않아? 점 점 점 커져서 예상치도 않았던 크기에 집을 무리해서 어떻게 다모여서 하게됬구요. 공사는 디자인협동조합 상회라고 협동조합이기도한데 건축 산업 디자인을 하시는 분들에서 실가에 리모델링을 해주셨어요 나중에 하시는 말씀이 이걸 다 부시고 다시 지었으면 더 싸게 들었을거다. 증축이 안되는 동네고 바로 저 앞에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사무실을 만들어서 바짝 긴장하고 저희 집을 호시탐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에요. 3월에 시작해서 5월에 끝났는데 그 기간동안을 이 동네 어르신들이 오셔서 피켓팅 시위를 하셨던 것 같아요. 가장 큰 이유는 여기 상담소가 웬 말이냐 장애인이 웬 말이냐 청소년이 웬 말이냐 어딜가든지 아동청소년이 모이는 공간이 기피공간인 것 같아요. 어느 지역인지 아냐 정릉에서 동방주택단지라고해서 사실은 여기는 정릉이라고 할 수 없고 길음 쪽에 속하는 우리는 잘 사는 사람들이였다. 여기있는사람들이 수준 있는 사람들인데 여기 무슨 상담장이 들어왔냐 하셨는데 저희 말씀을 잘 안들으시더라구요. 청소년공간이면 가출 청소년 오는거 아니냐 .그런 아이들 오는거 아니냐. 라고해서 처음에는 잘못했나보다 라는 생각이 1달 정도 거의 매일은 진행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랬고 유연하게 관계를 맺었어야했는데 이 동네 오래 살지도 않았고 제 성격상 그것을 못하고 이거 사들고 인사를 못하다가 아이 씨 몰라 안해 어떻게 되서 지금은 그냥 인사하는 정도로 지내고 있습니다.

2015년 6월 14일 공간 개소식을 했고 되게 재밌었어요. 공간이 있으니까 일단은 우리한테 돈을 줄 사람도 없을 것이고 돈을 받으면 그만큼 해야하는 것들도 많고 후원자들을 많이 모아서 시작을 하자 식용유 라면 쌀 부터시작해서 하이튼 후라이팬 들고온사람 등등 개소식 때 쌓여있던 물건들이 아직도 아지트에 많아요. 7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서 이제 일 년이 갓 넘었네요. 올해부터 활동하는 여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들어오고 자원봉사활동도 시작하면서 학교랑도 관계를 맺고있습니다. 공사를 싸게하려다보니까 어디다가 맡길수없어서 공고를 나오셔서 친구중에 기능올림픽에 나가서 상받은 동창분들이 많아서 동창분들이 도와주시고 저희도 책방선생님이 제 남편이 모여서 거의 매일밤을 한시 두시까지 옆에서 보조라도 하면서 이 공사기간동안 귀신나오는집이라고 소문이나서 아이들이 귀신체험하는 집을 다 때려부시고 있었습니다. 공사를 무사히 마치고 투자를 했고요, 다 소개시킬순없고요 아지트 틴스와 도서관을 소개시켜드리자면 아지트 틴스는 인근지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하고, 학교를 끝나고 아이들이 와서 하는 것은 교육공동체와 자치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을 우리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향하는 것은 청소년이 아동과 달리 사회적 성장을해야하는데 안전한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관계맺기를 아이들이 잘 못하는데 학년친구가되고 그래서 자기와 타인을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맺기의 공간이였음좋겠고 가출청소년들을위한 어떤공간을 만들어야하나 학교밖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할까하다가 학교는 다니는데 책가방만 메고 왔다갔다하는 친구들이 사고를 치는것도아니고 학교에서 주목을 받지도 않아요. 그런 무력감 사는 것이 재밌게 만들자라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여서 깨어나는 공간이였으면 좋겠다. 사는게 죽는것보다 그쪽에 더 관심이있으면 좋겠다. 남하고 비교 하지말고 나의 삶의 방향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자율적인 성장의 공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이 따뜻한 친구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활동 프로그램들은 시장보고 요리하고 식사하는 전과정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시행됩니다. 텔레그램 단체방이 있는데 누구차례다 하면 콩나물국밥이요. 하고 메뉴를 정하고 레시피를 만들어서 아이들이 같이 와서 시장을보고 준비를 하고 식사가 끝나면 일곱시반 정도되면 그때부터 청년들이 함께해요. 여기 아홉분의 청년 문화예술활동가들이계세요 이분들은 어떤분들로 섭외를 했냐면 아이들이랑 프로그램하는데 지친 분들, 정해진 시간동안에 프로그램을 해야하는 분들 아이들과 느슨하게 만나고싶다 관계맺고싶다 계속만나고싶다 한달에 한번씩만와달라고해서 돌아가면서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다른 활동들을 진행하게 되고 연극 디자인 요리 놀이 캐릭터 극작 사진 음악등 다양한 선생님들이 오시고 일년이 좀 넘었지만 처음에는 애들아 나음악하는 사람이야 하면 표정이 어쩌라고 이런표정이였고 선생님은 글을써~ 그러면 선생님이 글쓴거 보여줄까? 하면 아니요로 시작이 되었거든요 그렇다고해서 굶거나 그런친구들이 아닌데 정서적인 결핍인 아인지 최대7번을 밥먹는애가 있었어요 삐적마른친구였는데 저 쌀을 어떻게 강담할것인가, 계란말이를 해도 이 가운데는 두껍게 말리고 끝부분을 왜 나를 줬느냐부터 시작해서 전쟁터가 되거든요. 식사의 품위는 거의 없다고 보면되고, 진짜 정글같이 시작을했었는데, 먹으면서 내일 뭐먹어요가 항상질문이였어요. 6개월지나면서 아이들 질문이 달라지더라구요. 아이들이 밥을안먹고 적게먹고 내일뭐해요? 우리 밥먹고 뭐해요? 이런질문으로 바뀌면서 그렇게먹는날들이없고 선생님들이 배가불렀네~ 라고 할정도로 쓱봐서 고기봐서 없으면 안먹으려고하고 어쨌든 처음에 오시는선생님들중에는 애들이랑 계속누워서 매니큐어 만 칠하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나가면 극작가인데도 화장실가서 속옷 확인하고 몇 달동안 안하시고 그냥 놀아준것같아요. 그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아이들이 관심을 갖게되면서 열의가 되게 높아요.

저는 아무래도 상담을하니까 저나 여기오시는 꿈분석하시는 선생님은 타로나 이런걸로 아이들을 만나기도하구요. 이런활동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있구요 한달에 세 번 자치회의가 있어요. 최수경선생님이 새로오신 활동가선생님인데 젊은선생님들과함꼐 자치회의를해요. 우리가 무슨 자치회의를해요 그런건 학생회애들이나 하는거지 이런개념이 있었는데 한달됐나요? 그 충격적인 질문을 받았는데 아이들이 저희 권력이 너무 쎄다는거에요. 그런 문제제기까지 나와요. 너는 여기가 우리공간이라고하는데 너의 허락없이는 되는것이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다. 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사람이 돈을 갖고있기 때문에 후원금도 관리하고 권력이 쌘거다. 돈을 뺏어야한다. 저사람이 확인하고 컨트롤 하는 모든 활동을 뺏어오자 메뉴 추천하는 것, 벌을 준다는 것들은 우리가하자 화장실 관리감독 우리가하자 다가져갔어요 훨씬 편해졌죠 아이들이 그걸 아는 것같아요. 어떤 도구를 가져야 우리가 권력이 생긴다는 것을. 자치회의는 아이들한테 엄청 중요한 시간이 됐어요. 자치회의만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구요. 또하나 아지트에서 자부심을 갖고 하는 것은 목공과 요리를하기 때문에 지역 프리마켓을 나가서 돈을 벌어요 그걸로 여행비를 벌어요 우릐의 여행비는 우리가번다! 그런취지로 여행을 가는데 그 여행도 파란만장한 4박5일을 중고등학생 아이들과 한곳에서 지지고볶고하면 안 일어나는 것들이 없는거 같은데 아이들이 이를 통해 성장하는 일이 너무 많구요 재학중인 중고등학생들이 많아요. 정릉근처에서 많이오는거같아요 월요일부터 금요일 네시부터 아홉시반 아이들이 있어서 못올라가는데 부엌공간이고 옆에 마루가있고 베란다를 개조해서 목공실도 있고 공간이 크지는 않아요. 아이들이 요리하고 밥을 먹고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고 치우는공간이구요, 이건 목공을 만든다너니 시각 디자인하는 선생님이 오셔서 여기 아이들은 밖을 통해서 올라가야하는데 울타리를 칠해본다던지 그런활동을 하고 자치회의가 여기서 3번열리는 시간인데 인민재판처럼 될 때도 있고 훈훈하게 마무리될때도있고 있습니다. 아지트 틴스노래만들기는 인디음악하는 선생님이 오셔서 아지트틴스 노래를 만들어 음반제작까지도 도와줍니다. 제가 듣기에는 택도 없는데 팔겠다고, 꿈까지 꾸고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선생님들밖에 살 사람들이 없는데 말이죠. 이렇게 정릉개울장에나가서 아이들 물건 파는 모습들이고 우리가 여행비 우리가번다! 목공 제품보고가세요~ 를 못해가지고 거의 뭐 챙피해하고 부모님이와서 구경하라고하면 절대 안알렸는데 지금은 동대문 상인 수준으로 엄청잘해요 주변사람들이 무서워할정도로 그래서 못사요 돈이 딱 맞아야 하거든요 잔고랑 판매개수랑 그게 맞춰진적이 거의 없어요 2시간을 돈을 세면서 맞췄는데 체크를 잘못한 걸 알아내긴 했어요. 그걸 차곡차곡 모아서 여름 여행때는 그거하고 후원비해서 50퍼센트씩해서 버스비 고깃값을 하고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단양으로 여름캠프를 다녀온 모습들이구요. 이밖에도 아지트 텐스에서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비 맞으면서 운동하고 체육대회도 하고 아니면 발표회도 진행을하구요 인근 학교축제에도 가고있고 저희가 추구하는건 아이들이 겁내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 대학못가는데 나 돈 없는데 겁내지않고 자기가 관심있는 것 들을 끝까지 해보는 경험들을 하면 좋겠다. 나 혼자하지 않고 사람들이랑 친구들이랑 같이하면 좋겠다. 라는것들을 저희가 바라고 있구요. 뒤죽박죽 도서관은 다른도서관들이 기능하는것들을 하지않아아요. 책을 아주저렴한 가격에 판매는 하고있지만 문이 개방형이기 때문에 동네의 꼬마들이 물마신다던가 화장실에 가는 이런식의 공간이구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올해 시작한 격주마다 금요일마다 놀이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17차시까지 진행을 했는데 뒤에 사진을 보시면 이게 놀이터에서 하는 프로그램인데 아지트도그렇고 책방도 그렇고 아무래도 애초에 의도한건아닌데 학교가끝나고 매일매일 여기와서 학원을 가진 않을거 라는거죠. 집에서 누군가가 붙잡고 잘 챙겨먹이는 아이들은 오지 않을거란 얘기죠. 그러다 보니까 취약계층 아이들이나 교육복지 대상 아이들이 구십퍼센트정도돼요. 화가 많은 아이들도 있는데, 혹 그러다가 놀이터 프로그램을 하면서 땀을 뻘뻘흘리면서 놀다보니 도움이되는 것 같아요. 텃밭프로그램들은 텃밭을 직접 키워서 스토리만들고 그림으로 만드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방울방울그림책과 같은 많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꿈의 공간 추억의 만화부터 최신웹툰까지 다있는 뒤죽박죽 별장 만화도서관 청소년들이 자주오긴하는데 만화라는게 참 그렇더라구요 만화는 잘 매니아들이 많은거같아요 만화책은 기부도안하고 빌려주지도않아요 거의 이쪽책은 책방선생님이 2년까지의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기부를 하셨거든요, 만화는 거의 우리돈으로 주고샀어요 기부도안하고 만화의 큰 문제는 계속나오잖아요 끝나야하는데 뒤에 몇권 안나오냐고해서 마련을 해놓고 고민이에요 계속채워 나가야하는데 만화방이있고 만화를 통한 만화와의 그림 만화외의 요리 만화와의 운동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말씀 드릴 순없지만 최대한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겁먹지않고 기죽지 않고 주눅들지않고 자신을 찾는 공간이였음 좋겟고 다양한 어른들이 날 도와주네? 왕따없이 친구들을 사귈 수 있네? 라는 안전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저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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