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티 서울의 공간은 어떻게 재생되고 있을까? <메타기획컨설팅> 이승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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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라는 회사의 대표입니다. 메타는 89년에 만들어졌어요. 잘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기획 쪽으로 가다가 문화관계컨설팅을 많이 하고 문화 관련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메가시티 서울의 공간은 어떻게 재생되고 있을까? 지금 작은 주제를 가져올까 생각은 들었어요. 도시재생에 대한 전 세계적 맥락과 한국의 맥락은? 익숙한 단어인 것 같아요. 한 3~4년 전만해도 실질적으로 도시 재생과 관련한 이야기보다는 도시 개발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재생이라는 얘기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접근하기 시작한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최근에 가장 큰 핫이슈로써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으로써 도시재생이라는 그릇 속에서 만나게 되고 이야기되고 있는 것 같아요. 한 가지 확실한건 전 세계적으로 이제 도시재생이란 얘기는 한국 뿐 만 아니라 유럽, 미국, 여러 나라에서 도시재생에 대한 얘기는 많이 있었고 유럽 쪽에선 훨씬 전에 도시재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 그 전 단계에서도 이 얘기는 많이 해왔습니다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도시재생부분은 이렇게 기본적으로는 시티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전제를 둔 맥락이기도해요. 그리고 전 세계에서 다들 도시재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대륙별 도시별 나라별에 따라서 전체적으로 똑같진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재생을 말하고 해외사례에서도 많이 얘기하고 중요한 이슈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저희가 생각했을 때 전 세계의 도시재생에 대한 이슈들이 그 나라에 딱딱 맞춰 떨어지진 않아요. 큰 이유 중 하나는 한 지역 한 땅에서 살아오던 긴 시간 속에서 흐름이 전 세계 사람이나 사는 사람들이 다 같지 않다는 것에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이야기만 해도 1시간이상을 말할 수 있어요. 한국적맥락에서 우리나라의 도시개발은 6.25이후 근대화라고 하는 유신정권 이때에 한꺼번에 도시들이 만들어지고 하면서 도시가 급속도로 발전되고 그때는 산업적인 맥락에서 도시를 만듦에 있어서도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편의를 가장 극대화시켜서 산업적인 생산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으로 오피스타운들은 한 쪽에 몰아넣고 길을 뚫고 지하철이나 버스들이 다가가게하고 메가타운을 조성시켜서 사람들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빨리 가서 일을 보고하는 그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케이스가 우리나라적인 도시를 초기에 구축했던 방법론이에요. 산업적인측면과 경제적인측면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케이스입니다. 자세한 얘기에 대해서는 사례에서 조금씩 얘기하도록 하고.

한국적 맥락의 사례를 봤을 때 크게 세 군데가 있어요. 남산골 한옥마을, 플랫폼창동61, 세운상가 입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뭐 옛날에 좋았던 지역인 필동에서부터 한옥을 옮겨다 놨는데 관광지화 하는 과정에서 진행했던 케이스라고 보면 되고, 플랫폼창동61은 동북4구해서 붐업을 하겠다고 해서 어떻게 발전시키면 좋을까 정책적 고민 속에서 들어온 케이스고, 세운상가는 초기에 도시를 만들었을 때 주상복합인데 메가 컴플렉스라는 것을 세웠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쇠락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법으로 이걸 재생시킬 수 있나 하는 세 가지 관점의 사례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이미 도시적 맥락에서 의미와 역할을 가지고 있는 영역을 더 강화하여 사회적 효과성을 높이는 경우. 체험이란 말을 안 쓰고 구경하는 공간이었는데 그 부분을 더 강화시켜서 사회적 효과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겠느냐. 즉 기본의 부분을 대도약 , 흔히 말하는 업그레이드 그걸 획기적으로 어떻게 도약시키겠느냐, 일단은 이걸 먼저 보는 것이 좋겠는데 남산골한옥마을의 역사에서 필동지역이 남산 바로 밑에 있는 피서지였다고 하네요.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더불어 한양5동이였고 남산골의 제모습찾기를 90년부터 일제가 만든 것부터 아파트가 있었던 걸 다 정리하고 좀 더 예전에 있었던 모습을 찾아보자 했던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지금 있었던 이승업 가옥 김춘영 가옥 윤씨가옥등 다섯 개를 옮겨서 존치시키고,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초기에서는 이걸 그냥 행정에서 진행하던 부분을 했는데 하다보니까 이것이 활성화가 안되더라고요. 이걸 좀 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하다가 저희 같은 회사와 더불어 열 몇 군데 안을 가지고 경쟁을 해서 저희한테 가장 훌륭하다고 해서 저희가 위탁운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저희가 얘기했던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기존에 있었던 것이 아니니까 문화 공간 플러스 예술 공간 관광지라는 이 세 가지 부분에 대해서 제가 갖고 있는 세 가지 역할을 세 가지가 다 다른 부분을 통합적으로 만들어서 총체적관점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해서 기본에서는 그 당시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파견된 다섯 명 정도가 관리하는 공간이었어요. 지금 현재가 운영하고 있는 부분은 저희가 들어간 사람 20명 플러스 80여명이 이 자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극대화하기 위해서 운영전략을 어떻게 하느냐를 했었고 브랜딩 한옥마을 이름자체를 적극적으로 이사회에 알리고 과학적인방법으로 이용자와 수용자를 확대하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던지 공간이 세종문화회관 이렇게 그렇게 공무원들 셋이 했던 부분을 공간 부분을 다시 정비하고 이것을 따로 운영하는 것을 같이 다 묶어서 체제를 재정비하고 활용 공간에 대해서 극대화시키는 부분과 그것의 활용 방안을 놓으면서 새롭게 채워나가는 방법을 개진했었어요. 실제적인 부분에서 프로그램 관리와 공무 사회에서 일하는 것들을 진행했던 케이스입니다. 그래가지고 저희가 얘기했던 것은 무엇이냐면 그 당시에 실질적으로는 이게 이번 년의 운영했던 결과치입니다. 실질적으로는 관광 온 수는 그렇게 늘지는 않았어요. 저희가 원한 것은 그 공간이 갖고 있는 벽을 높여서 그 공간이 보다 더 사람들한테 문화적이고 예술적이고 사람들이 왔었을 때 여긴 조금 달라 라는 질적인 향상을 추구하려고 했기 때문에 수는 많이 안 늘었어요. 2년 사이에 큰 사건이 2번 있었고 한번이 세월호고, 오픈한날 개관할 때 삼년이 간다고 하는데 그 작업을 못했고 메르스 때문에 아무도 세 달 동안에 처음으로 저희 한옥마을에 개미새끼도 안다니는 날도 있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양적으로 늘어난 건 아니에요. 양적에서 늘이고자하는 내용은 별로 안했어요. 그때도 이야기 했었어요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선 거의 더블 이상의 프로그램을 개진시키고 한옥마을에 대해서 고민 중에 상설공연을 하는 부분을 고민 했었는데 그것을 하지 않고 다양한 국악이나 신진예술가들을 데려오고 한옥마을의 한옥을 이상해서 국악 전통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서 진행하고 소개하는 작업들을 했습니다.

플랫폼창동61은 원래 도시의 단순 기능을 했던 주차장이었어요. 놀고 있는 지역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는 경우 새로운 문화적인 이슈들을 침투시켜서 도시 전체에서 새롭게 자부심을 주기도 하고 새로운 활력을 주는 프로그램의 일환에서 만들어진 거고 무에서 유를 창출해나가는 방법, 도시의 유휴영역에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초기에는 이런 것이에요 93년 7월에 서울시는 그 당시에 국철하고 지하철 4호선이 교차하는 부분에서 갈아타기 위해서 빨리 오는 사람들이 주차하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주차장을 개장했어요. 이 부분이 의미를 가지다가 이게 시간이 흐르니까 실제적으로 그 활용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었어요. 실제로 거기에 차를 세우는 건 호박 차만 수 십대가 세워져있는 부분이었어요. 동북4구에 지역 불균형 부분에서 동북사구를 묶어서 전체적인 도시 재생을 하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좋겠느냐 문화적 이슈에서는 창동아레나라고 하는 것. 아레나는 대중공연장 2만 명을 모으는 것 그것을 만들기 전에 과연 그게 처음부터 되겠느냐 사전에 음악 산업을 붐업 시키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 해서 진행이 되었고요 저희만 한 건 아니에요. 다양하게 많은 연구진이 한 부분은 대중음악산업의 맥락을 창동에 유입시키자, 마이미사운드 리버풀사운드와 같이 창동사운드라는 것을 문화적인 새로운 발전소 같은 역할을 해보자해서 만들어진 케이스이고 어떤 장소적 아레나사업의 사전작업이라고 했고 지역 구성원으로 역할 중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에요 창동가면 실제로 청소년의 대다수는 미아리에서 성신여대로 가고 대학로 홍대까지 가는 그런 청소년들을 창동에서도 즐길 수 있게끔 하는 과정이 있구나 했던 것이고 왜 홍대와 같이 두 개로 찢느냐 다른 부분이다 나와 있었던 것 같아요. 이 과정을 통해서 지역의 사람들의 프라이드를 살리고 브랜드를 심어주는 역할을 했어요.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만들어 줄 수 있었고 동북사구의 잠자는 곳 아니면 학원가만 있는 곳을 문화적인 부분을 어떻게 넣느냐 해서 창동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내가 해보자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창동사운드라고 했고 지역생활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한 성과는 여러 가지에 영향을 주었어요. CNN에서 찍어갔어요. 케이팝 보다는 이제는 창동도 한번 포커스 해보자해서 10년 뒤에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관련해서 이야기가 되기도 했어요. 프로그램은 아주 당연한 게 여기 입맛들과 흔히 말하는 케이팝 같진 않았어요. 언더그라운드 출신들 락, 랩 하는 친구들 힙합 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을 프로그램들을 개진해서 많이 진행했어요.

세운상가는 기본적으로 거대 도시공간에 맥락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경우에요. 쇄락하고 있는 공간을 맥락에서 발견해서 이 시대에 맞는 아이템을 어떻게 하는가 생각한 케이스입니다. 길을 모시면 66년에 종묘일대에서 그 당시에 66년에 세운상가가 만들어진 이 공간이고 다음해가 개관을 했을 때 모습이고 2009년에 세운상가 반대쪽에 현대상가가 철거된 것을 알 수 있고 오세훈 시장당시에 녹지공원으로 만들자했던 부분이고 다 철거하게 되었어요. 대개의 맥락은 개발형식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기존의 것을 놔둔 상태에서 나머지를 연결하는 방법으로 해보자 오시장 부분하고 이차이점은 기존 부분에서 건드리지 않고 활성화시켜서 해보자라고 하는 부분이 훨씬 더 강한 부분입니다. 초기에 만들어졌을 때는 여기가 최초 전 세계에서의 최초라고 하더라고요. 주상복합으로 하는 것이어서 겉에서 보는 것이랑 안에서 보면 매력적이에요. 굉장히 잘 만들어진 공간이기도 합니다. 유럽이아니라 뉴욕에 있었으면 굉장히 비싼 아파트였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처음에 나왔을 때 강남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가서 아파트의 기능은 빠졌고 여기 있는 전장상가들 제조업체가 들어왔고 창고로 거의 쓰고 있고 또 하나는 인터넷 쇼핑을 할 때 쓰는 역할들을 주로 하고 있어요. 현재의 맥락은 설명을 했지만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건 예전부터 도심부분에 중요한 요소로 보면 이게 종묘 축과 봤을 때 높은 건물이 유네스코에서 지정했기 때문에 종묘에서 보면 뷰가 굉장히 좋아요. 아-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보다 매력적인 공간이기도하고 한번 건드려 볼 말한 근대의 메가스트럭쳐이기도 하고 낙후하였으나 뚜렷한 자기맥락을 가진 도시영역입니다. 중화학 이런 것이 아니라 주로 제조업중심이 여기서 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거기서 기계장인들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고 쇄락하였지만 나중에 더 얘기하겠지만 그들이 만났을 때 어떠한 시너지나 힘을 발현 해낼 지와 그래서 뭐 미래의 맥락에서는 그래서 어떤 것들이 필요하게 되고 어떻게 해야하는가 해서 하고 있습니다. 주로 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최근에 저희가 규정했던 것은 도심 창의 제조 산업 혁신처 대규모의 사업이 도심에서 발현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속에서 흔히 말하는 새롭게 파생되어지는 제 4차 산업이라는 부분과 메이커라는 사람들이 만들어서 새롭게 만들어하는 계속 모아서 향후의 도심에 기술이나 산업이 도심 사람들의 흥미와 재미를 같이 설계 할 수 있는 근거지를 만들려고 하는 근본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분이에요. 나아가서는 지금은 기술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천착이 되어 있으나 더 나아가서는 예를 들어서 도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 까지도 여기서 끌어당겨서 굳이 외곽에 나가지 않고 여기에 해당하는 도심이 아닌 사람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주로 하는 것 들은 이렇게 메이커들하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 들을 랩을 만들어서 예전부터 했던 오락기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이랑 만나서 오락기를 만든다든가 조명하시는 분들이랑 같이 최근에 해당하는 조명을 같이 만들어 본다던지 아니면 예술적인 부분으로 사람들의 이슈를 이끌어내서 이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고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사업에서 진행을 하고 있고 궁금하신 부분은 저한테 질문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도시의 빈집과 청년의 주택이 만나려면?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김솔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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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발제를 도시재생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주시라고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도시재생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었는데요, 민달팽이에서 하고 있는 일은 청년당사자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해서 청년들이 겪고 있는 청년의 문제를, 주거문제를 청년들이 풀어내자! 제도개선에 관한 정책 같은 것은 변화가 더딘 거죠. 그러면 우리끼리 해볼 수 있는 건 없을까 하면서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청년당사자거나 이런 가치를 같이 지향하는 사람들과 출자를 하고 그런 돈으로 주택을 임대해서 살고 있는 조합입니다. 민달팽이 유니온과 협동조합은 그랬을 때 민달팽이가 하고 있는 일은 서울이라는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가 집결되어 있는 청년들이 주거문제로 많이 대두되는 사회문제를 아주 질타를 맞고 있잖아요. 그런 문제를 사회가 안전망을 만들지 않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에서 도시개발이 재생이 많이 비교가 되는데 도시개발과 재생이 어떤 점에서 다르냐 했을 때 도시재생 같은 경우에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느냐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민달팽이 이야기도 청년들이 당사자가 돼서 주도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청년이 관련해서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앞서서 집과 관련해서 도시재생을 조금 공부를 했는데 도시재생법 1조를 보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나와 있어요. 좋은 집은 대체로 많은 어른들은 잘 팔리는 집을 좋은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새로 짓거나 평형이 있거나 시세차익을 나중에 팔았을 때 이익이 나면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좋은 집의 기준 같은 것이었는데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있었었고 그래도 괜찮았던 것은 실제로 가능한 어떤 환경이기도 했던 거예요. 시대이기도하고 주거사다리에 기대하지 않고 다른 해법이 이사회에 필요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마주하고 있는 주거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한데요 여기서 보면 대한민국 전국가구의 주거 빈곤율 수에요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굉장히 빠르게 떨어지고 있어요. 굉장히 잘하고 있는 이유인데 서울청년1인가구는 갑자기 역행을 하면서 주거 빈곤율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차이가 이상하잖아요. 요즘 청년들이 고시원이나 반 지하를 좋아해서 고시원에 사는 게 내 맘에 들어서가 아닌 이상 이상한 이유인거죠 비주택이라고 하면 이제 주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집이 아닌 집 집주인이랑 문제가 생기면 법에서 보호받을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 다섯 명 중 한명은 서울사람이고 실제로 20대 청년 10명중 3명은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 집을 사서 안정된 주거를 누리고 싶다고 생각을 하죠. 내 집 마련의 꿈이 여전히 실재하기도 하고 그게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대졸 신입 초봉 평균이 2000년대에서 2010년에서 오른 건 전세를 245에서 325로 늘렸어요. 오래 일을 해야 전세 정도에 대한 일을 할 수 있고 소득5분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서울 주위 분위에 해당하는 주택을 사려면 75년 정도 있어야 하는 거예요. 3살 아이가 20살이 되어서 75년 정도 일하면 96살이 되었을 때 자기 집을 살 수 있는 거죠. 소득2분위 까지 하면 예수님까지 오래 살아야 기형적인 규모가 이미 생겨져 있는 거죠. 그랬을 때 청년들은 아무래도 너무 높은 소득을 당장 벌 수 없으니 지금 소득수준에서 살 수 있는 집에서 살려고 노력을 하겠죠. 생각보다 열악한 집들인 경우가 많아요. 타워팰리스 보다 비싼 고시원이라는 이야기를 민달팽이유니온이 한 적이 있는데요. 타워팰리스를 전체로 하고 평당으로 하면 고시원보다 저렴한 거죠. 적은 평당에 사는 것 때문에 고시원이 더 비쌀 수도 있지만 청년들이나 열악한 주거환경과 저소득과 관련된 사람들은 어쨌든 평당 임대료가 비싼 주거를 선택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 문제는 이미 너무 심각해졌고 너무 많은 청년들이 겪고 있고 어떻게 해결할거냐고 했을 때 민유에서는 제도 개선과 관련 된 내용도 하지만 그거와 별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 해서 고민을 했어요. 이건단순한아이디어인데요 서울에 월세를 40만원씩 내는 것을 20년 20명이 20년 정도 계속해서 월세를 낸다고 하면 계산해보면 20년후에 19억이 모이는 거죠. 이 19억으로는 서대문구 주택을 2개를 살 수 있어요. 20명이 살 수 있는 주택을 2개를 살 수 있으니까 월세를 조금 내서라도 20년 뒤에는 돈을 계속 내고 있던 청년들의 집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들만의 집이 생길 수도 있으니 민달팽이를 했고 6호 까지 해서 공금을 하고 있고 여기나오는 것들은 민간에서 공급했거나 공공의 지원을 받아서 한 경우가 많고 LH에서 비슷한 운영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LH에서 집주인이고 주택을 등유기관을 우리로 해서 임대 해주는 거죠. LH 달팽이집을 하고 있는 중인데 근간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청년들이 모였고 청년들이 계속해서 달팽이집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달팽이집 운영에 이바지 하는 일들을 한 것들인데요, 이렇게 해서 공급을 했고 그리고 앞에 저희 3호 같은 경우에는 성북구 동산동에 있는데 아주 빠른 걸음으로 3분 거리에 있는 성신여대에서 3분! 역세권에 있는 달팽이집인데 약간 집이 신기하게 생기긴 했어요. 노후 된 주택이기도하고 집을 처음 예약하러 갔을 때도 집이 깔끔하진 않았는데 조합원들을 모집해서 리모델링을 같이 해서 공급한 경우고 4호는 은평구에 있는데 노후 주택이고 청년들이 직접 공급을 했어요. 60명 정도 식구들이 살고 있고 공급하고 있는 것까지 하면 120명이 달팽이집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달팽이집은 청년들이 출자를 한다고 해도. 청년들이 돈을 모으지 못하잖아요. 가장 처음에 창립했을 때는 10명이 안 되는 청년들이 1억이 안되게 모였는데 1억이 안 되는 걸로도 전셋집을 마련할 수 있지만 그 모든 조합원이 살 수는 없잖아요. 이렇게 고민 하다가 달팽이펀드를 했는데 통장 안에 머물고 있는 100만원을 빌려주세요. 그러면 2,5 퍼센트의 이자로 돌려드릴게요 라고 하는 달팽이펀드인거죠 많은 분들이 같이해주셨고 2억 5천을 모으게 되서 3호를 무사히 공급 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가 있기 때문에 그냥 살기가 그냥 살면 안 되지 않을까? 아무나 살면 안 되지 않을까? 해서 입주과정이 꽤 복잡하기도 한데 1차 교육은 입주신청을 하면 교육을 2번을 하는데 키워드토크라고 해서 함께 살기 때문에 소통하는 게 중요하니까 먼저 소통을 통해 해보고 2차 교육은 이미 살고있는 사람들과 해본다음에 입주계획서를 제출하면 서로 질문도해보고 친해지는 시간을 해보고 이사를 오기 전에 살림살이 같은걸 같이 사서 기회비용을 줄이자 새로 사지 말고 밥솥이 있는 친구는 가져오고 살림살이 워크숍을 하고 이사할 때 두레 이사두레를 통해 트럭을 빌리는 게 비싸니까 한 날에 같이해서 쭉쭉쭉 찍어서 한 번에 이사하기도 하자. 이 과정들이 있었고 설명회와 예비조합원 교육을 조합원들이 직접 하기도 해요. 현재 달팽이집에서 살고 있는 조합원들인데 계속해서 참여를 해주시는 거죠. 어려운 일이기도 한 게 달팽이집에 살아볼까? 하는 분을 일대일로 만나는 거예요. 연애하던 시절을 생각해보시면 소개팅을 해도 낯간지러운데 이게 어려운 일이기도 한데 달팽이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것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하니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제로 운영도 잘해주시고 계십니다. 그럼 같이 살아 볼까요? 하게 되면 입주계획서를 쓰게 돼요. 집을 사게 되면 집주인이랑 계약해서 살면 되는데 온갖 절차들이 있어요. 입주계획질문들이 엄청 긴 거죠. 계약하고 살면서도 규약 같은 것들을 같이 정하는 것들이 됩니다. 살아가고 있는데, 그냥 사는 게 아니라 반상회를 운영하거나 적당한 주택 관리를 집사람들이 문서같이 하는 것들을 하고 있어요. 전구가 나가면 오피스텔같은 경우에는 어떤 집을 관리인이 바꿔준다고 하더라고요. 관리인 비용을 부담을 해야 하는 거니까 어느 정도는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자치적으로 해나가는 그런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해서 좀 더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 아까 3호집이나 5호집은 조합원들이 리모델링을 했다 해서 그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참여했던 모든 조합원들이 이제 200명정도계세요 200명이 모두 다 등장 하셨던 건 아닌데 회비를 월마다 내신 건데 리 모델링을 하면서 조합원들의 홍보를 좀 했었고 그러면서 많은 조합원들이 등장을 해주셨어요, 건축을 전공한 졸업을 앞두고 할 일이 없는 건축학도를 리 모델링을 하는데 많이 돕겠다 했고 저랑 같이 조합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취미를 일로 발전시킨 친구고, 리모델링에 참여했던 조합원인데 리모델링도하고 3호에 살게 되면서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이 일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예비입주자셨는데 입주하기 전에 직접 와서 리모델링을 해주신거예요. 페인트칠을 너무 어렵긴 했지만 직접 이렇게 많은 조합원분들이 해주셔서 공간을 새롭게 꾸며서 살게 되었습니다. 4호집 같은 경우에는 3호집 리모델링을 할 때 많은 조합원들이 많이 등장 할 수 있구나를 느껴서 상근자들이 다 기획하는 거에 조합원들이 일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달팽이집들이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기획부터 같이 해보자고 해서 달팽이집공작당을 준비하게 됐어요. 건축을 하거나 하고 계시거나 흥미를 가지고계시거나 그런 분들이 오셔서 팀을 나눠서 옥상을 꾸밀 팀 시설과 설비와 관련된 도구 다루는 일을 하게 될 짜잘하게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팀 팀별로 조합원이 운영했고 많은 조합원분들이 참여를 하게 되셨어요. 실제로 체리색 몰딩이 많은 집이였는데 하얗게 칠해서 이쁘게 꾸몄던 조명도 같이 다같이 골라서 밝고 이렇게 식탁 같은 경우에는 목공해서 같이 만들어서 조합원분들이 조합원활동하면서 별거 다 해 본다고 목공도같이하고 영화를 이렇게 같이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거죠. 그런 공간에서 조합원분들도 같이 잘 살고 있습니다. 여기가 이제 지금도 계속해서 잘 살아가고 있고, 3호집 같은 경우에 어렵게 구했어요. 1호집과 2호집은 한국사회투자재단이라고 해서 서울시에서 추려나왔던 기금재단이 있어요. 거기서 공급을 딱했었는데 14년도 12월 이였는데 그때부터 일 년 동안 집을 찾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상근자들이 빈집을 찾아다니면서 수박 들고 방문하기도 했는데 다 거절당했는데 시세를 그렇게 줄 수 없다고 하거나 이런 사업장을 받을 수 없다고 하거나 1년 동안 못했던 곳인데 성북신나에서 집주인분을 소개해주셔서 3호를 공급하게 되었고 청년 분들도 조합원으로 오게 된 거예요 실제로 가능한 실험이겠구나 라고하면서 2016년 현재 같은 경우에는 6호까지 많은 집들을 공급 할 수 있게 되었고 정리하고 싶은 말은 혼자서 할 수 없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고 하면, 이건 당사자들이나 주체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고 작은 사례라도 만들어 냈을 때 그 다음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고 언젠가는 문제가 해결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발제를 마치면 어떨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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